신간 '혼자가 좋지만-고독사는 걱정입니다'  
역설적인 '죽음 채비'…'홀로 죽는 자'에 대한 관심의 메시지 

곧 '고독사 예비군'이 되는 50대 초반의 독신인 일본 작가 몬가 미오코는 '잘 죽는 법 연구'에 심취해있다.  

유령 이야기 등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내용의 책들을 그간 써왔지만, 이번에는 자기 죽음에 관한 것이다.  

형제자매도 없이 홀어머니를 모시는 그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존엄하게 죽을 묘안을 찾고 있다.  

그는 살아있는 3족 이내 친족이 나이가 많아 차례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최후를 혼자 맞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싫어하는 죽음은 고립사다. 썩기 전에 발견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고독사가 낫다. 고독은 때로 인생에 평온함과 즐거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않는 고립은 분명 힘든 일이다.  

고립사는 '독거노인 왕국'인 일본의 행정 용어다. 일본 내각부가 2010년 발표한 고령사회백서는 고립사를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둔 후 상당 기간 방치된 비참한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사후 며칠간 발견되지 못한 건 고독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립됐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고립사한다. 자식, 손자와 함께 생활하는 집 2층에 기거하던 노친이 사망하고 이틀이나 지난 뒤에 발견되기도 한다.  

중증 치매를 앓던 부인이 남편이 죽은 사실을 모른 채 오래 방치하면, 그것 역시 고립사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머리맡에서 가족이 다투는 모습을 본 사람도 고립사에 가깝다. 가족에 둘러싸여 무연고 사회를 살아온 것이다. 

고령화가 심화한 일본은 독거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서비스가 훌륭하지만, 저자는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많다. 

홀로 맞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갑자기 죽고 난 다음에 짐이 되는 것이 문제다. 

남겨질 어머니는 물론, 연명 여부를 결정하거나 시신을 처리할 사람, 장례와 유품 처리 등을 해줄 사람에게 그야말로 '민폐'를 끼치게 된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사황'이 아니다. 사황은 저자가 지어낸 말로 죽음을 맞이한 상황을 의미한다. 

원치 않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사망 전후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일본은 고령화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늘어났고, 수급자 가운데에는 예상보다 오래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은퇴 생활이 길어지면서 저축은 바닥나고 마땅한 일자리도 없어 노인들이 빈곤해지는 것이다. 

어지간한 부유층이 아니라면 일본에서는 장수는 행복이 아니라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역설적이다. 

 

편안한 죽음은 무엇인가. 

저자는 부정맥이 있다. '잘 키운다면' 심실세동으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 번째 희망 사항은 심실세동으로 즉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암에 걸려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적당한 고통으로 죽는 것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 시기를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암에 걸려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늙어서 피하고 싶은 죽음 1위는 굶어 죽는 것이다. 특히 죽은 뒤 몸에 벌레가 뒤덮인 채 발견되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 

죽은 지 3일 이내에 발견될 수 있게 하려면 하루에 한 번 이모티콘 메시지를 주고받을 상대를 만든다. 스마트폰 애플을 통해 인연을 만드는 것도 좋다. 신문 배달을 시키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행정 관청의 안부 확인 서비스도 있다. 24시간마다 안부 확인 메시지를 보내고, 회신이 없으면 지정해둔 긴급연락처에 전화한다. 

병원에서 죽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그러나 중병 치료가 효과를 보여 3개월 이내에 죽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일본 병원들은 최근 병상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입원 기간 제한을 두기 때문에 병원에서 죽는 일이 어려워 질 수 있다. 

요코스카시는 독거인이 사망한 뒤 유골 인수인을 못 찾는 사례가 급증하자 이른바 '종활제도'를 만들었다. 

긴급 연락처, 장기 제공 의사, 유언장, 계약 관련 정보 등을 미리 등록시켜준다.  

한가할 때 상조회사에 연락해 합장묘를 예약하는 것이 좋다. 무연고 독신자를 위한 합장묘를 운영하는 사원도 많다 

무관심 속에 잡초만 무성해질 공원묘원은 기대하지 말자. 

유골을 캡슐에 담아 지구 궤도를 돌게끔 쏘아 올리는 '우주장' 같은 사치스러운 장례는 언감생심이다. 

사후에도 인터넷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남기고 싶다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추모 계정을 이용하면 된다. 

죽음에 드는 비용을 사망보험금으로 충당하고 싶지만, 수취인을 2촌 이내의 혈족으로 지정한 제도는 못마땅하다. 다른 사람으로 지정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혈연보다는 사람과의 인연이 중요하다. 혈연은 때로 저주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저출생, 고령화와 함께 생애미혼율이 높아지고 혈연 자체는 확실히 줄지만 보험금 수취인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 

죽는 방법을 찾는 여정의 끝에 저자가 깨달은 바는 생물학적으로 혼자 죽을 수는 있어도, 사회적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누군가'가 철저하게 혈연이나 혼인관계로 한정되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을 저자는 다시 한번 꼬집는다.  

'홀로 죽을 수 있는 사회'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각 방면에서 현세대가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혼자서 죽을 사람 모두 힘을 모으자고 외친다.  

저자는 이 말에 언젠가 세상의 절반이 될지도 모를 혼자 죽는 사람을 위한 관심과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담지 않았나 싶다. 

그는 죽는 법을 찾다가 지금껏 살아온 과정에서 좋은 인연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는 법을 발견하고 나니 살아가는 법에 집중하는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잘 죽는 법에 관해 공부함으로써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삶은 더욱 값있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로 들린다. 

반니.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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