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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s from Federal Elections over the past half-century

2019 연방총선이 마침내 이번 주 토요일(5월 18일)로 다가왔다.

이번 연방총선에서는 제46대 연방의회를 구성할 총 151석의 연방하원의석 모두와 총 76석의 상원의석 절반의 주인을 찾는다.

2016 연방총선의 경우 하원의석은 총 150석이었지만 이후 인구 변화에 따른 선거구 조정작업을 통해 1석이 늘어 집권당이 되기 위해서는 하원에서 전체의석의 절반보다 한 석 많은 최소 76석을 차지해야 한다.

집권당의 하원의장 몫을 고려하면 77석을 차지해야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이번 총선에 참여할 수 있는 호주의 총 유권자 수는 2019년 3월 31일 현재 1천691만 1천613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96.5%에 해당하는 1천632만3천823명이 유권자 등록을 마친 것으로 집계됐고 이미 약 400만 여명의 유권자가 사전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해외 투표자도 8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등록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NSW주로 527만1천1명이며, 빅토리아주가 416만 1천403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가장등록 유권자 수가 적은 곳은 노던테러토리로13만9천146명에 불과해 ACT 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

18일 투표일 당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적으로 7천 곳의 투표소가 운영되며, 총5000만 장의 투표용지가 배포된다. 

투표용지를 기입할 때 사용할 연필은 총 11만개가 준비되며, 투표함은 총 7만개 마련된다.

호주동부 표준시로 저녁 10시 정도에 총선의 승자와 패자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날의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연방총선 반세기의 승자와 패자

호주한인이민역사의 본격적 출발점인 베트남 전쟁 종전(1975년)은 호주 정치권에도 거센 소용돌이를 예고했다.  

23년 동안에 걸친 자유당의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고 1972년 집권한 노동당의 고프 휘틀람은 호주사회에 거대한 개혁의 소용돌이를 일으켰지만 2기 정부의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호주헌정 사상 최초로 연방총독에 의해 파면됐다.

1975년 베트남 전쟁 종전과 함께 아시아 이민 문호를 활짝 연 자유당의 말콤 프레이저는 1983 연방총선에서 ‘전설적 노조 지도자’ 봅 호크에게 패해 노동당에 정권을 이양했다.

고프 휘틀람-말콤 프레이저-봅 호크

봅 호크는 1984년 12월 총선에서 자유당의 앤드류 피코크를 꺾고 장기 집권을 향한 교두보를 구축했다.

봅 호크는 1987 총선에서는 훗날 자유당의 최장기 연방총리로 등극하는 젊은 시절의 존 하워드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며, 1990 총선에서는 1984년에 맞붙었던 앤드류 피코크와의 재대결에서 역시 압승을 거뒀다.

봅 호크는 1989년 천안문 (톈안먼) 사태 직후 호주에 머물고 있는 중국 학생들을 만나 ‘굵은 눈물’을 떨어뜨린 후 이들의 호주 체류를 허용하면서 호주 내 중국교민사회의 급속한 양적팽창의 모멘텀을 제공했다.

노동당의 최장수 연방총리의 기록을 써내려가던 봅 호크도 결국 자신의 2인자로 당시 ‘세계 최고의 연방재무장관’으로 자처했던 폴 키팅의 당권 도전에 밀려 정치권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름 노동당의 최장수 연방총리의 기록을 남겼다.

키팅- 휴슨…. 키팅- 하워드

1991년 두번째 당권도전을 통해 가까스로 당권을 장악하고 연방총리에 등극한 폴 키팅.

그는 집권과 함께 호주의 탈 유럽을 선포하고 “호주는 아시아 속해 있다”면서 ‘호주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마보 케이스에 근거한 원주민 토착 소유권 법안을 통과시켰다.

1993 연방총선에서 패색이 짙었지만 폴 키팅의 혁신적인 정책과 특유의 뚝심으로, ‘GST 제도’를 앞세운 경제학 박사인 자유당의 존 휴슨 당수에게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폴 키팅의 과도한 개혁정책에 국민들은 ‘피곤함’을 느꼈고 결국 1996 총선에서 단 49석에 그친 노동당은 94석을 확보한 자유당의 존 하워드에게 참패를 당한다.

노동당의 봅 호크-폴 키팅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존 하워드 시대가 활짝 열렸던 것.

폴 키팅, 킴 비즐리, 마크 래이섬을 물리친 존 하워드 11년

1996년 4월 28일 발생한 호주 최악의 포트 아서 총기 난사 사건 직후 총기소지 규제 강화법을 통과시키며 강력한 리더십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존 하워드는 1998 연방총선과 2001 연방총선에서 킴 비즐리가 이끈 노동당을 연거푸 가볍게 물리쳤다.

최장수 야당 당수의 기록을 남긴 킴 비즐리는 정계은퇴와 함께 주미대사를 거쳐 현재 서부호주 주총독으로 재임하는 등 화려한 공직 생활을 이어갔다.  

킴 비즐리에 이어 노동당 당권은 당시 불혹의 나이를 갓 넘긴 마크 래이섬에게 넘어갔다.

한국 언론들은 노동당의 마크 래이섬을 ‘호주의 체게베라’로 묘사하며 큰 관심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과도한 젊음과 개혁을 앞세우다 존 하워드의 경륜과 안정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패했다. 

TV 토론을 앞두고 연장자인 존 하워드에게 펼친 ‘과격한 악수’가 그의 패착이었다.

정계은퇴와 함께 ‘돈키호테 식 장외정치’를 이어가다 아이러니하게 ‘인종차별 논쟁’의 주인공인 폴린 핸슨의 원내이션 당을 통해 2019년 NSW주 상원의원으로 정치권에 복귀했다.  급진 진보 정치인에서 극우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

 

2007년 연방총리 단명 시대 개막

11년 6개월의 장기집권의 대기록을 수립한 존 하워드는 당내 2인자 사이먼 크린에게 당권을 이양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5번째 연방총선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당 당권을 장악한 외교관 출신의 정치인 케빈 러드에게 그는 무릎을 꿇고 만다. 

케빈 러드가 정권탈환을 위한 비장의 무기로 존 하워드의 베네롱 선거구에 투입한 ABC 방송기자 출신의 맥신 맥큐에게 존 하워드 자신도 지역구에서 낙선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총선 결과는 노동당 83석, 자유당 연립 65석이었다.

총선 승리 직후 지지율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케빈 러드는 그러나 임기도 못 채우고 줄리아 길라드에게 당권을 빼앗기고 평의원으로 전락했다. 

총선 직전 줄리아 길라드에 의해 외무장관으로 발탁됐지만 그는 호시탐탐 당권 복귀만을 노리면서 본격적인 ‘노동당 혼돈’의 시대를 열었다.  

당권 장악 후 2010 연방총선을 이끌게 된 줄리아 길라드는 자유당 토니 애벗과 피를 말리는 접전을 벌여 헝의회(노동당 72석, 자유당 연립 72석) 상황을 연출했고, 당시 보수지역에서 당선된 무소속의 롭 오크숏트와 토니 윈저의 지지 선언에 힘입어 힘겹게 정권을 수성했다.

길라드의 손을 들어준 롭 오크숏트와 토니 윈저는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앞당기는 결과만 초래하고 정치권에서 사라졌다.

존 하워드의 정계은퇴 후 브렌든 넬슨, 말콤 턴불에 이어 당권을 장악한 토니 애벗은 득표율에서 노동당을 앞지르는 등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집권에는 실패했다”말을 남기며 분루를 삼켰다.

겨우 정권을 지킨 줄리아 길라드는 그러나 자신의 전임자와 똑같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다시 그 전임자에게 당권을 빼앗기고 정치권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권을 되찾은 케빈 러드는 2013 연방총선에서 토니 애벗의 자유당 연립에 참패(자유당 연립 90석, 노동당 55석)를 당하고 그 역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압도적 승리를 거둔 토니 애벗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말콤 턴불에 의해 축출되며, 그에 이어 당권을 잡은 말콤 턴불은 2016 연방총선에서 빌 쇼튼의 노동당을 76석-69석으로 물리쳤지만 그 역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축출됐다.

2018 당권 파동을 통해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은 스콧 모리슨 총리는 이번주 토요일 두번째 총선을 이끌고 있는 빌 쇼튼 노동당 당수와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TOP Dig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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