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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 "스릴러 그릇에 가족을 담았습니다"

눈치챌수 없는 가족이란 함정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스릴러 그릇에 가족을 담았습니다"

 

 

2018 호주 한국영화제 초정착으로 선정된 <기억의 밤>(2017)의 장항준 감독이 시드니를 찾았다.

<기억의 밤>은 극장판 영화로 2002년 <라이터를 켜라>, 2003년 <불어라 봄바람> 이후 14년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그 사이 2003년 케이블 TV용 영화 <음란한 사회>, 2011년 TV 드라마 <싸인>의 연출 말고도 <귀신이 산다> 등 여러 작품에서 각색이나 각본 혹은 카메오 연기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표 드라마 작가로 손꼽히는 ‘김은희 남편 ‘ 혹은 ‘개그맨보다 더 웃긴 영화감독’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왔다.

2016년 9월 방영된 <2016 무한상사>편에서 김은희 작가와 함께 코믹함과 스릴러를 적당히 섞어 선보이면서 연출가로서의 모습을 방송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무한도전에 대해 장 감독은 인터뷰에서 “부담감에 밤잠을 설쳤다. 생각보다 길어져 기억의 밤 촬영도 뒤로 밀렸었다. 김은희 작가와 ‘괜히 했다’ 그런 생각도 많이 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장항준 감독은 아이돌그룹 빅뱅 지드래곤, 배우 이제훈, 김혜수, 쿠니무라 준 등 역대급 캐스팅과  수준높은 작품을 선보여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연출한 이전 작품들까지 재조명 받기도 했을 정도.

장항준 감독은 <박봉곤 가출사건>(1996). <북경반점>(1999) 등 재치있는 코미디로 호평을 받으며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코미디로 시작해서 스릴러로 장르적 전환을 한 것인가란 기자의 질문에 감독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코미디란 장르적 특성상 청춘들의 예술이라 생각한다. 2-30대 감독들이 더 센스있게 만들수 있지 않을까 판단이 든다. 하지만 ‘사람 이야기’를 집중하려 하고 ‘장르’는 뒤따른다”고 그는 말한다.

 

형제의 엇갈린 기억과 의심

충격과 반전의 연속

 

영화는 화목한 네 식구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며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못 하는 게 없는 모범생 형 유석(김무열)과 그를 동경하는 동생 진석(강하늘)은 끈끈한 우애를 자랑하는 형제다. 하지만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석이 괴한에게 납치당하고, 19일 만에 납치 당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로 돌아오는 사건이 벌어진다. 형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 진석은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형 유석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가 가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안락한 집은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한다.

<기억의 밤>은 2014년의 끝자락, 술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의 끝을 잡고 시작된 영화다. 장항준 감독은 "친구의 사촌 형이 가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보니 사이가 서먹해지고 사람이 이상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적인 설정들을 더해 지금의 영화를 만들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단 장항준 감독은 극에 1997년이라는 특수했던 시대적 배경을 설정하고 미술, 소품 등 하나하나를 신경 쓴 섬세한 연출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스크린 위로 옮겼다.

이야기의 뼈대는 '가족'이다. 자상한 부모님과 다정한 형, 그런 가족을 사랑하는 동생. 이상하리만큼 완벽해서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의심이 피어오르는 가족이 등장한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가족이 파괴될때 가장 끔찍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생각됐고, 대결 구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동성인 형제라고 설정했다”고 장 감독은 설명했다.

고풍스러운 단독 주택, 결코 열어선 안되는 작은 방, 지나치게 완벽한 가족. 잘 짜인 연극 같은 설정이 지켜보는 관객의 긴장감을 배로 높인다. 이야기의 흐름은 거침없고, 전반부 곳곳에 깔린 복선과 허를 찌르는 반전도 빈틈이 없다. 충무로 이야기꾼이라는 별칭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의 , 이스터에그

벽지 제작에만 2천만원

 

영화 <기억의 밤>의 제작진은 숨 막히는 긴장감의 배경이 되는 2층 집을 완벽히 표현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장소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1년여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해 영화 속 집의 외관은 CG와 미술로 완성됐다. 배경음악을 위해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직접 가서 오케스트라와 작업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미술팀은 1997년의 시대상을 생생히 드러내고 극적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디테일을 더했다.

살인사건의 현장이지만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다는 관객의 질문에 장 감독은 “벽지제작 비용으로만 약 2천만원이 소요됐다.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특히 집은 작은 소품들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전달해야 했다. 이를 위해 형제의 방의 각 면을 다른 벽지를 사용했는데, 앵글을 달리해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배경적 느낌을 더해 몰입감을 극대화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답했다.  

이스터 에그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부활절 계란’을 뜻하는 이스터에그는 게임이나 프로그램 등에 숨겨놓은 재미있는 메시지나 기능을 말한다.

납치당하기 전 다정하고 지적이었던 형 유석(김무열 분)이 세미나 발표를 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 그림은 오스트리아 이론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한 사고 실험을 설명한다.

이 장면은 유석이 얼마나 엘리트적인 인물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불완전함과 세상의 모순을 지적하며 진석과 유석 두 인물 설정에 대한 디테일을 더한다. 장항준 감독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말하는 양자역학에 대한 인간의 불완전함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닌 모순이 ‘기억의 밤’과 닮아있는 것 같았다”며 이 이론을 영화 속에 등장시킨 이유를 밝혔다.

두 번째 이스트 에그는 이삿짐을 정리하는 진석(강하늘 분)이 책장을 정리하는 장면에 숨겨져 있다. 책장에 책을 꽂는 장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소설책은 ‘장미의 이름’이다. 20세기 최고의 지적 추리 소설이라고 불린 이 책은 14세기 유럽의 암울한 시대에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추론해 나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장항준 감독이 “중세의 우울한 배경과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기억의 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듯이 <기억의 밤>은 세세한 소품 하나까지 신경 쓰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의 위트있는 대답은 기자와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관객들과의 대담의 시간에서도 많은 웃음을 선사하며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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